어떤 인물을 표현할 때 외적인 모습을 특정하거나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대상을 지칭하는 말은 더 많죠. '화려하다', '수려하다', '청아하다' 등등 다양한 말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단단하고 강한 느낌을 한데 아울러 표현하는 말은 적습니다. 그 가운데 '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빼어나다'라는 뜻을 지닌 '고매하다'는 미적인 기준 이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에 붙이는 수식어입니다. 지난 8일 옅은 붉은빛을 띤 지붕이 인상적이었던 글씨당 한편에서 고매한 매력을 지닌 김소영 서예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술 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글씨당 #Korean_한글 #한글_아이돌
글씨당 소개 문구에 있는 '글로 제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무슨 뜻인가요?
김소영 작가(이하 '소영') : 사람들은 서예나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며 우리 생활과 조금 멀리 서서 감상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건 우리 생활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캘리그라피는 상업예술이거든요. 집 앞 빵집의 메뉴, 자주 가는 식당의 간판, 얼마 전 문을 연 가게에 쓰인 글자, 옷에 새겨진 레터링이나 패턴 등 수많은 글씨가 우리의 삶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곳 글씨당은 70년 정도 된 옛집입니다. 이 도시에서 우리 현대사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간이죠. 제가 하는 예술과 닮았어요. 저는 그동안 캘리그라피의 상업성과 현대성, 서예의 전통과 보존 가치 등,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분야를 함께 하면서 단순히 예술적 결과를 내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러 가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거대한 붓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도 종이에 쓰인 글씨를 넘어 과정 전체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생이 구분되지 않듯이 글도, 라이프스타일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호 소통하면서 그 범위를 넓혀간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성이죠. 기본을 지키고 경험하면서 삶 속에서 새롭게 소화해서 바깥으로 내보이는 모습, 제 라이프스타일이자 글씨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서 언급한 확장성을 실천하는 모습이 현재 다양하게 활동하는 작품세계라고 봐도 될까요?
소영 : 네. 맞아요. 저는 캘리그라피를 먼저 하다가 서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역방향으로 배운 셈이죠. POP 전반을 다 다루고 있고, 그중에서 붓글씨와 붓 캘리그라피가 전공분야입니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형태라기보다 홀로 연구하고 공부해왔습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서고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과 서예, 손글씨를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큰 붓을 들고 눈앞에서 그려내듯이 선보였던 퍼포먼스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작업하면 실수도 적고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면 앞에서 지켜보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고, 글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제 호흡과 관객의 반응, 붓이 지나간 화선지 위에 살짝 먹물이 튄 부분까지 온전히 작품으로 승화되죠. 결국, 작가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작가의 예술세계와 작품 모두 가치를 더합니다. 퍼포먼스, 수업, 전시, 작업, 그리고 SNS를 통해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소개하는 과정 모두가 소통이고 작업이라고 봅니다.
강릉이라는 도시는 작가님께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나요?
소영 : 강릉에 온 지 7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유롭다'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한적하면서 적적하지 않은 그 느낌이 좋습니다. 제가 하는 일과 강릉의 분위기가 잘 맞아요. 바다와 산, 솔숲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조용히 골목을 걸을 때면 붓으로 글을 쓸 때처럼 차분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가끔 관광객들이 시내에 가득할 때면 그 자리를 돌아서 가기도 해요. 사람을 좋아하지만, 차분히 걷는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저의 뮤즈도 강릉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허난설헌입니다. 그의 삶, 처연함, 고난과 역경, 그 가운데 지켜온 예술 활동까지 모든 부분이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 한때는 그의 못다 핀 예술을 이어 활동하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난설헌 기념관에서 전시하며 관객분들께 글씨를 그 자리에서 쓰고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난설헌 생가터 앞에 있는 풀밭에 앉아 관람객에게 글을 써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늘과 땅의 푸르름, 차분하면서 열정적이었던 난설헌의 삶과 오랜 역사가 주는 장대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한복을 갖춰 입고 글로 관객과 소통하는 건 그 자체로 거대한 작품을 그린 기분이었습니다. 난설헌의 삶에 조금 더 다가갔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작업 공간이자 일하는 장소로서 글씨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영 : 전통과 그 변용에 관한 관심이 많습니다. 글씨당에서 지내면서 어느새 저와 이 공간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로 표현하기보다 여러 가지 면을 담고 있는 모습이 어우러진달까요. 저는 서예를 하면서 작품 의뢰를 받는 1인 기업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면 제작, 마케팅, 영업, 소통 등 여러 부분을 스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과정을 글씨당에서 하고요. 기본과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며 나가는 제 모습과 예술 작업 공간이자 일터, 사무실인 글씨당은 그런 면에서 많이 닮았죠. 이제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하는데 좋을까요. 하나가 된 기분입니다. 글씨당이 저 자체인 거죠.
일을 의뢰하러 오시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글씨당은 비즈니스 공간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돈을 버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현대적인 영역에서 디자인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공간에서 일하는 저는 직장인이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의뢰를 완성하는 기업 대표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모든 작업에 있어서 누군가의 대표 이미지이자 얼굴이 될 수 있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온 힘을 기울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글씨당
When it comes to describing a person, there are many words that focus on their external appearance. Especially when referring to a beautiful subject, there are many words such as 'gorgeous', 'graceful', and 'pure'. However, there are few words that express both internal and external beauty, as well as a strong and solid impression. Among them, 'gomae' is an adjective that means 'to be of high value beyond aesthetic standards' and is used to describe something with exceptional value. In a recent article featuring the impressive red roof of a building on October 8th, it was possible to have a conversation with Kim So-young, a calligrapher with a gomae charm.
Q: What does the phrase 'presenting a new lifestyle through writing' in the introduction of "Gulssidan" mean?
Kim So-young (hereinafter 'So-young'): People often think of calligraphy or calligraphy works as art that is enjoyed from a distance from our daily lives. However, we can see writing everywhere in our daily lives. Calligraphy is a commercial art. We can see many writings in our lives, such as menus of bakeries near our house, signs of the restaurants we frequently visit, letters written on the store that recently opened, lettering or patterns inscribed on clothes, and so on.
"Gulssidan" is an old house that is about 70 years old. It is a space that fully embodies our modern history in this city. It is similar to my art. Rather than focusing solely on producing artistic results while combining the commercialism and modernity of calligraphy and the traditional and preservation value of calligraphy, I tried to encompass various aspects. The reason why I performed with a large brush was because I thought that the entire process of writing on paper was also a work of art. Writing and lifestyle are constantly connected and expandable through basic principles and experiences, and can be digested anew in life and shown outwardly. This is my lifestyle and the essence of writing.
Q: Can we see this expansiveness in the world of art that you are currently working in?
So-young: Yes, that's right. I first started with calligraphy and then got into calligraphy. I studied pop art in general, and brush writing and calligraphy are my areas of expertise. I studied and researched alone rather than learning from a master. Therefore, I had to show my handwriting and calligraphy to the public. The reason why I performed with a large brush that drew in front of my eyes was also for the same reason. You can create beautiful works by sitting still and working. However, through the performance, you can communicate with the audience who are watching and present the entire process of writing as one work of art. From my breathing to the audience's reactions, to the part where the brush slightly splatters on the paper, everything is fully sublimated into a work of art. Ultimately, when an artist has someone to view the work, both the artist's artistic world and the work itself become more valuable. I view performances, classes, exhibitions, work, and communication with many people through SNS as communication and work.
Q: What kind of inspiration does the city of Gangneung bring to you as an artist?
So-young: It has been about seven years since I came to Gangneung. If I were to express this city in one word, it would be 'leisurely.' It has a quiet and relaxed feeling that is not too busy. The atmosphere of Gangneung matches well with my work. I can draw inspiration from the sea, mountains, and pine forests, and I feel calm when I walk quietly through the alleys, just like when I write with a brush.
[인천공항=뉴시스] 조성우 기자 =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최영창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2022년 인천국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에서 명예 수문장에 임명된 가수 송가인, 박금암 인천국제공항공사 안전보안본부 경비보안처장과 함께 김소영 작가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 2022.07.29. xconfind@newsis.com
29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밀레니엄 홀에서 2022년 인천국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 특별공연이 열렸다. 이 행사는 가수 송가인의 축하무대, 미디어 아트팀 타악 연주 등으로 풍성하게 구성했다. 공사는 최근 공항의 이용객 수가 코로나19 이후 최대인 6만명을 넘어서는 등 본격적인 항공 수요 회복세에 따라 공항 상주직원들과 이용객에게 감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김소영 작가가 캘리그라피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염보연 기자 입력 : 2020.04.15 06:00 ㅣ 수정 : 2020.04.23 10:41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간의 격차 문제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창조도시 혁명이다. 지난 20년 간 지역발전에 의미있는 성과를 꼽자면 서울 강북과 지역도시 골목상권, 제주 지역산업(화장품,IT) 강원 지역산업(커피, 서핑)이다. 그 주역은 창의적인 소상공인으로 자생적으로 지역의 문화와 특색을 살리고 개척해서 지역을 발전시켰다. 이제,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가 지역의 미래이자 희망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각의 지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육성과 활약이 필수적이다. 뉴스투데이는 2020년 연중 기획으로 지난 2015년 네이버가 만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의 현장을 찾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김소영 대표[사진제공=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 강릉에서 찾은 새 삶, ‘글씨당’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강릉시 홍제로 45에 있는 ‘글씨당’은 글씨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장소다.
글씨당은 캘리그라피 작가 김소영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캘리그라피는 글씨로 만드는 예술이다. 글씨를 다양한 스타일로 디자인해 글의 의미를 아름답게 시각화한다.
김 대표는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창조적 끼가 넘쳤던 김 대표에게 반복적이고 지루한 회사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 속에 고달픔을 달래려 시작한 취미가 캘리그라피였다.
글씨를 예쁘게 쓰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느새 좋은 글귀가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내면과 외면이 동시에 채워지며 치유받는 것 같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위로받을 수 있는 힘이 됐다.
캘리그라피의 매력에 푹 빠진 김 대표는 학원과 공방을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을 인스타그램에 하나씩 올리다보니 어느새 포트폴리오가 됐고,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 무렵,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 강릉을 찾았다. 강릉은 마침 축제시즌이었다. 김 대표는 축제장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매일 무료로 글씨를 써줬다. 자신의 이름이나 예쁜 글귀를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에 가치를 느꼈다.
김 대표는 바다가 예쁜 강릉에 평생 살면서,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2015년 10월, 강릉 안목해변 카페거리 초입에서 첫 공방인 ‘김소영의 캘리그라피’를 열었다. 같은 건물 1층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과 협업하는 형태였다.
올해 초,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홍제동의 70년 된 구옥을 재생해 새로운 공방 ‘글씨당’을 차렸다.
김소영 대표[사진제공=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글씨당’의 주 활동은 원데이 클래스와 출강 등 강의와 행사,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공연, 디자인 작업이다. 게스트하우스와 협업하거나, 한옥마을이나 해외에서 한글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알리는 일도 했다.
김 대표가 처음 강릉 커뮤니티에 스며들 때, 명주동에서 활동하는 청년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김 대표는 청년들과 함께 명주동 거리공방 축제, 프리마켓 등에 자주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에 녹아들 수 있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전시와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 4월에 나무와 글씨를 콜라보한 전시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하반기로 미뤄지게 됐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글 콘텐츠로 퍼포먼스 공연을 펼치려던 계획도 코로나19가 뜸해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일이 다 막힌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더 많이 하게 된 일도 있다. 강릉 시내에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붓글씨 간판이나 심볼 디자인을 해주는 일을 한다.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의뢰가 들어온다.
■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강릉만의 콘텐츠가 영감 더해
김 대표는 “강릉이 아니라 다른 지역이었다면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이렇게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강릉에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홍길동전처럼 글씨가 스며들기 좋은 스토리가 풍성하다. 그런 강릉 고유의 분위기가 김 대표로 하여금 글씨 쓰는 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녀는 늘 강릉이 고맙다. 좀처럼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삶이 강릉에 와서 달라졌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삶을 만끽하고, 누리게 된 것은 오롯이 강릉이라는 도시 덕분인 것 같다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거창하지 않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고 싶다.
[사진제공=김소영 대표의 캘리그라피]
김 대표의 캘리그라피는 여성스러우면서도 단아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그녀가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킬 때 우선시하는 것은 획과 선의 질, 그리고 결이다. 아울러 용지와 글씨의 여백도 중시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걸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이 마음에 스몄다”고 말한다. 그녀의 글씨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적으로 진화하고 강릉이라는 로컬의 문화 속에도 스며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마치 일기처럼, 일상의 깨달음 속에서 진화하는 자신의 캘리그라피를 모아 언젠가는 이야기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사진제공=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취재 및 자료협조="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모종린 박민아 강예나 연구보고서 ‘the local creato’>
강원도의 여성 로컬 크리에이터(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청년)들이 다양한 장르를 융복합하여 새로운 문화예술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강원도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우먼스 파티(Women’s Party)’ 전시회를 연다.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오는 2일부터 시작하는 우먼스파티 기획전은 <江原圖 : 강원의 그림>의 이름으로, 강릉의 젊은 여성 예술가가 모여 만든 전시다.
이번 전시의 이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강원도의 지명인 ‘江原道’가 아니라 ‘江原圖’, 즉 강원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강원의 이미지를 답습하기보다는, 예술가 각자가 느낀 강원도를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려낸 결과물이다. 글, 사진, 회화, 도예,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경험과 감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김소영 캘리그라퍼]
김소영 캘리그라퍼는 민화와 문자를 접목해 그의 세계관을 담아냈다. “글씨가 표현할 수 없는 회화적, 조형적 느낌을 민화와 접목해서 표현했다”며 이번 작품 <글씨당>을 설명한다. 특히 '해학반도도'를 참고해 풍요로운 세계관을 작품에 반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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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도예작가]
김소영 도예작가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작품을 준비했다. 서울에 살다가 강원도로 거취를 옮긴 그에게 강원도의 삶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작품명의 뜻을 일깨워줬다. 김 작가는 “강원도에서 서울에서보다 현실에 더 만족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며 강원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김예지 그래픽디자이너]
김예지 그래픽 디자이너는 컵을 통해 강원도 동해바다의 물마루를 표현했다. “바다는 파란색이 아니라 주황색도, 빨간색도 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며 이번 작품을 설명했다. 그가 직접 경험한 양양 해변의 겹겹이 일어나는 물마루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물의 색을 작품에 담아 냈다.
[김효정 캘리그라퍼]
김효정 캘리그라퍼는 강원도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캐릭터와 캘리그라피로 시각화한다. 타지에 살다가 다시 그의 고향인 강원도 속초로 돌아왔을 때 느낀 감정은 ‘다정함’이었다. “다시 돌아와도 품어주는 느낌을 받았고, 다정하다고 느꼈다”며 “이러한 다정함을 전하기 위해 귀여운 캐릭터와 다정한 글귀를 캘리그라피로 담았다”고 전했다.
[박은희 소설가]
박은희 소설가도 <피를 먹는 새>라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이 책에는 강원도에 와서 발견한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박 작가는 “강원도에 힘든 시기에 왔었다”며 “그 시기에 상실한 것들과 욕망한 것들을 이야기로 풀었다”고 작품 의도를 전했다.
[이혜진 사진가]
이혜진 사진가는 <존재하는 광부2>라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 그가 사는 곳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가 경험한 강원도는 많은 이들이 흔히 떠올리는 자연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아직 탄광이 남아있어요”라며 “이러한 (지역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최소연 도예가]
최소연 도예가는 <마음잔>이라는 작품에 강원의 자연을 담았다. 그는 “강원의 자연에서 느낀 포근함과 위로의 경험을 빚으려고 했다”며 이번 전시 작품을 설명했다.
[최지원 오트톡톡 대표]
채지원 오트톡톡 대표는 청포도와 강릉 무화과가 토핑된 요거트를 화폭에 담아 이번 전시에 참여한다. 채 대표는 “요거트 메뉴도 예술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강릉 이미지에 어울리는 그래놀라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풍요롭게 꾸민 8인의 예술가들은 모두 우먼스 파티의 일원이다. 우먼스 파티는 지역과 사람, 그리고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8인의 강원 청년 여성 예술가들 모임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소통하며 지역에서 ‘즐겁고 선한 시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먼스 파티는 지역 내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이전까지 예술활동을 본업으로 하지 않던 사람일지라도 예술인들이 협업하며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예술 활동을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혜진 사진가는 우먼스 파티는 자신에게 ‘작가로서 내딛는 첫 발걸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전까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을 운영해왔다. 이에 “우먼스 파티를 통해 작품을 위해 움직이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며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소중한 발걸음’이라고 말한다. 이 사진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우먼스 파티가 예술 활동의 길을 이끌어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다. 4월 10일(토)과 4월 16일(금) 2회에 걸쳐 진행된다.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즐겁고 선한 시도를 통해 강원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하는 모든 걸음이 가치있는 활동이 되길 바라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인사를 전한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의 말이다. ‘강원, 여성, 예술이라는 주제와 우먼스 파티의 가치와 방향에 공감한다면, 우리와 함께 파티를 즐겨요’라는 그들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이들의 파티에 동참하길 바란다.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9일까지 서울 청담 갤러리원 원화작품 전시와 스타필드 하남에서는 원화.NFT와 디지털 작품이 전사됐다.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서는 원화와 NFT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메타버스 공간으로 확장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NFT는 예술 분야에서도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 시장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호령전에서는 회화, 조각, 오브제,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출품작을 원작과 함께 디지털, 메타버스, NFT 등의 형태로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창업, 청년들은 언감생심(焉敢生心·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것인가)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코로나19는 종식될 터,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청년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다. 하지만 그 미래에 정답이 있을 리 없고, 밝고 희망찰 수만도 없다. 나만의 비즈니스를 만드는 창업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꿈꾸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한번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젊은이가 불쑥 사표를 쓰는 결단을 내리고, 좋은 사람과 삶터를 찾고 만나, 쑥쑥 크고 있는 스토리 말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누구나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있다. 그 동네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청년을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지역(local)이라고 하면 서울·수도권에서 떨어진 지방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 성수동, 문래동 역시 로컬이고, 여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청년 누구나 크리에이터다.
그런 점에서 강원도는 도시와 농촌 가리지 않고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곳곳에서 활약하는 지역이다. 2019년 4월 이 주제로 칼럼을 쓰기도 했다.(https://www.ajunews.com/view/20190417171153109)
이 글에 등장했던 크리에이터 중 김소영 캘리그래피(손글씨) 작가가 얼마 전에 한글 글씨체(폰트)인 ‘난설헌체’의 저작권을 등록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래, 이 친구가 있었지!”
평범한 청년이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가 스스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낸 이후 계속 도전 중인 스토리에 딱 맞춤한 인물.
[사진=작가 제공]
코로나19 상황이 잠시 주춤했던 11월 12일 강릉으로 향해 그가 작업실로 쓰는 강릉시 홍제동 '글씨당'에 마주 앉았다.
그는 요즘 ‘핫’한 캘리그래피 작가이자 강원도의 대표 로컬 크리에이터 중 한 사람이다. 2시간 넘게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걸걸하고 힘찬 목소리, 밝은 기운, 생기가 넘쳤다. 그는 마치 딕션(diction·정확하고 유창한 발음)이 좋은 래퍼 같았다.
마치 랩을 하듯 김 작가는 실업계 여고생이 공장 노동자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과정,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을 쏟아 냈다. 기자와 작가가 한 '티키타카'(공을 짧고 빠르게 주고받는 축구 기술)식 대화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적었다.
그가 대표인 1인 기업 글씨당은 회사 이름이자,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센터장 한종호) 지원과 그가 모아둔 돈을 합쳐 1년 전 마련한 작업실 겸 주거 공간이다. 70년 된 집을 고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승재 위원(이하 위원)= 글씨당 툇마루 볕이 좋다.
김소영 작가(이하 작가)= 처음에 집을 살 때 이런 게 있는지 모르고 샀다. 건물을 올릴까 생각을 했었는데 (오랫동안 덧대온) 조립식 설비들을 뜯어보니까 툇마루도 있고, 기둥도 있었다. 그대로 살려서 살아보려 최소한으로 고쳐서 글씨당을 만들었다.
위원=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계속 붙여 놓은 걸 떼어내니까 본질이 나타난 건가?
작가= 그렇다. 최대한 안 고치려 했다. 지붕도 원래 있던 걸 뒀다. 제가 지금 30대 초반이다. 그런데 이 집이 70년이 됐다고 한다. 시간의 가치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만들어서 살아보고자 했다.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위원= 처음엔 빈 집이었나?
작가= 빈 집이었다. 골조, 마루, 지붕 등만 살리고 그 외 것은 다 쳐냈다. 동네 분들도 좋아해주신다. 동네 어르신들도 글씨당이 들어와서 동네가 산다고 말씀해주신다. 여기로 옮기고 나름 유명세도 탔고 작업 범위도 더 넓어졌다. 공간의 상징성이 있다고 느꼈다. 글씨당으로 온 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다.
위원= 강원창조혁신센터는 어떤 도움을 줬나?
작가= 이 공간으로 오기 전에 글씨와 관련된 여러 일을 하고 있었다. 강릉이라는 도시가 글씨와 잘 어울리지 않나.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전업 작가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걸 센터에서 해결해줬다.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고 방향성을 찾게 됐다. 예산도 두 차례에 걸쳐 총 3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첫 1500만원은 영상 콘텐츠 구축과 교재 제작에 썼다. 두 번째 1500만원은 글씨당을 만드는 데 썼다.
글씨당으로 옮기게 된 데는 센터에서 보았던 여러 사례들의 영향이 컸다. 재생 공간을 기반으로 잘 된 사례들을 보면서 (오래된 빈 집 같은) 재생된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센터의 금전적 도움도 의미가 있지만 공간의 가치와 맥락을 알게 해줬다.
[사진=이승재]
위원=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혁신센터의 의미는 뭔가?
작가= 제가 강릉에 온 지 6년이 됐고 글씨당은 1년 정도 됐다. 센터와 만난 지는 3년 정도다. 혼자 일하다 센터를 만나게 되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내 활동이 새롭게 발견되고 가치를 부여 받게 된 거다. 방향과 맥락이 맞아서 ‘서로를 돕는다’는 느낌이다. 서로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게 우리 지역에도 도움이 된다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원래 하던 일이 센터를 만나고 조금 더 커질 수 있었다.
글씨당과 강원센터의 얘기는 일종의 몸풀기, 김 작가는 본격적으로 실업계 고교 출신 공장 노동자가 작가가 된 전후사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사진=작가 제공]
위원= 어떻게 캘리그래피를 시작했나? 좋아하는 일이 비즈니스가 된 건가?
작가= 저는 원래 이 일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캘리그래피 작가가 되기 전 경기도 파주의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했다. 의정부의 한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19세부터 시작해 일 3교대 근무를 7년 정도 했다. 쉽게 얘기해서 공장 노동자였다.
공장 일을 하면서도 회사 근처 전문대학(두원공과대)을 다녔다. 전공은 브랜드디자인을 했는데, 캘리그래피는 취미로 배운 거였다. 회사 다닐 때 정말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바리스타, 가죽공예 등 다양한 걸 해봤다. 뭘 잘하는지 찾으려 다 배워보고 자격증도 다양하게 땄다. 결국 글씨가 제일 나랑 잘 맞았다. 3교대를 하면, 24시간 중 8시간을 근무한다. 남는 16시간 중에서 항상 7시간을 잤고 남는 9시간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웠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운 게 캘리그래피하는 데 도움이 됐다. 디자인에서 캘리그래피도 나오고 캘리그래피에서 비즈니스모델까지 갈 수 있었던 게 대학 덕분인 것 같다. 대학을 다닐 때 간판 글씨를 보며 ‘멋있다’ ‘나도 저렇게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원= 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작가= 디스플레이 제품 품질 관리를 했다. 디스플레이를 본다는 게 정말 일률적이고 반복적인 일이다. 좋은 회사였고 선배들도 무척 잘해줬다. 하지만 계속 할 일이라는 느낌을 갖기 힘들었다.
위원= 몇 년을 다녔나?
작가= 2008년 11월에 입사했고 2015년에 퇴사했다.
위원= 그 시기는 디스플레이 경기가 좋아 연봉도 많이 받았을 텐데.
작가= 그렇다, 연봉도 꽤 많았고 회사 지원으로 단기 중국 유학도 다녀왔다. LG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일을 하다가 결혼하고 아기 낳고 산다. 근데 저는 그게 싫었다. 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작업도 싫었고, 돈을 벌었지만 사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됐다.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어서 죽을 각오로 퇴사를 했다. 미련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인데, 나가서 재미없고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냥 죽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위원= 퇴사 후 뭘 할 계획이었나?
작가= 계획 없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부모님이 강원도 동해시에 자리를 잡으셨으니까 ‘와서 카페나 하면서 편하게 살아라’ 하셨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좀 쉬고 싶었다. 그때가 25살쯤이었다. 그만두고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답답했다. 모았던 돈으로 강릉에 집을 얻어서 나왔다. 오롯이 혼자 살아보고자 했다. 항상 미련 없이 살았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 하는 생각이었다.
위원= 캘리그래피 작가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나?
작가= 그냥 좋아서 취미로 하던 거였다. 강릉에 혼자 살면서 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구해 안목해변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그 카페 사장님이 강릉 토박이였는데 제가 손글씨를 쓰는 걸 보고 캘리그래피 강좌를 열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원데이 클라스를 했는데 30만원을 벌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40만원 벌 때였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페 2층에 공간을 얻어서 일을 시작했다.
위원= 사람 복이 있었나보다.
작가= 그렇다. 강릉이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니다. 저는 처음부터 좋은 분들을 만났다.
위원= 처음에는 무료로 글을 써줬다고 하던데.
작가= 1호 작품으로 어떤 가게 간판을 써드렸는데, 그 가게 사장님이 너무나 행복해 하셨다.그때 캘리그래피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간판쟁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내 가치에서는 그것보다 큰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돈도 받지 않았다. 강릉에서 열리는 행사나 축제에 한복 입고 가서 무료로 글씨를 썼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 글씨를 그냥 가르쳐줬다. 일이라는 생각 없이 재밌게 논다고 생각했다. 저는 논다고 생각하고 한 일들이었는데 베푼 거다.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적어주며 놀다 보니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착한 사람으로 봐주면서 진짜 그렇게 살게 됐다. 선순환이다.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사했다.
[사진=작가 제공]
김 작가는 요즘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년)에 푹 빠졌다. 허균의 누이, 불행한 삶을 산 천재 시인에 대한 오마주(경의)를 표하려는 거다. 특유의 글씨체, 난설헌체를 만들고 있다.
위원= 왜 허난설헌인가?
작가= 허난설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너무 좋아한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다시 꺼내주고 싶다. 그래서 허난설헌을 알리려 한다. 난설헌은 아이 둘이 모두 죽고 남편이 바람나고 기구한 삶을 살았던 당시 내 또래 여성이었다. 신사임당과 달리 허난설헌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허난설헌을 알리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의미가 없으면 돈을 버는 일이라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위원= 난설헌체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작가= 난설헌은 한자를 쓴 사람이다. 한글 글씨체가 없고 남아있는 것들은 다 한시다. 그걸 한글로 번역한 걸 보면서 공부한다. 사람들한테 글씨를 가르칠 때 “귀엽게 쓰세요”, “투박하게 쓰세요” 이렇게 가르쳤다. 그렇게 느낌만으로 전달하니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표현이 안 되더라. 그래서 ‘글씨체를 만들어서 더 잘 가르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체를 만들기 시작한 건 그 이유 때문이다. 돌담체, 솔방울체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 제가 제일 잘 쓰고, 영감을 받은 ‘난설헌체’를 만들게 됐다. 난설헌이 한글을 쓰진 않았지만 제가 시에서 얻은 마음을 담은 한글 글씨체에 ‘난설헌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난설헌체’는 이미지적인 것이고 난설헌에 대한 제 마음을 담은 글씨체다.
위원= 글씨라는 물리적 부분 말고 문장, 글귀는?
작가= 저는 매일 겪은 일 중에 인상 깊었던 일을 사진과 함께 적어 놓는다. 하루에 하나씩 쓴다. 그런 일기에서 문장이 나온다. 내 생각이 반영된 함축된 문장이 나온다. 그 압축된 문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대입해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카피나 슬로건, 시와 같은 느낌이다. 저는 함축된 문장을 좋아한다. 길게 해석되어 있는 글들은 정보성은 강하지만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짧은 한 줄은 열려있다.
김소영 작가 퍼포먼스 모습. [사진=작가 제공]
위원= 글 쓰는 퍼포먼스도 하고 있다.
작가= 젊은 여자가 붓을 들고 나와서 퍼포먼스 공연을 하는 것은 전무후무하니까 더 특별해진다. 배우지 않고 무작정 시작했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2018년 강릉 단오제 포스터 글씨를 썼는데, 단오제 본행사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강릉 토박이만 할 수 있다며 처음엔 안 된다 했다. 계속 부탁해 결국 10분을 받았다. 그게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됐다. 퍼포먼스를 하면 그 자리 분위기를 고취시킬 수 있다. 그게 정말 의미 있다.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위원= 앞으로 뭐 하고 싶은가?
작가= 사랑하는 만큼 일을 하게 되더라. 내 가족을 사랑하면 내 가족을 위한 일만 하게 된다. 제 경우 강릉을 사랑하니 제가 강릉을 위한 일들을 하게 되더라. 국가를 사랑한다면 국가를 위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저는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한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위원= 지역에 대한 사랑을 세계로? 알파벳 폰트도 생각하나?
작가= 난설헌체를 최종적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2000자를 써야 한다. 그런데 알파벳은 더 쉽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이라 글씨를 많이 써야 하는데 알파벳은 A부터 Z까지 쓰면 끝이다. 내년 초 글씨체가 나올 예정이다.
<정리=박하늘 인턴기자>
P.S. 김 작가에게 허난설헌체 사진을 추가로 요청해 받았다. 겸사겸사 지금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주고 싶은 말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래 작품을 보내왔다. "누구에게도 완벽한 정답은 없다. 각자의 입장과 환경이 있을 뿐"
[로컬 라이프][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작가 인터뷰] '붓이 닿은 모든 과정이 작품이 된다' 글씨당 김소영 서예가
어떤 인물을 표현할 때 외적인 모습을 특정하거나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대상을 지칭하는 말은 더 많죠. '화려하다', '수려하다', '청아하다' 등등 다양한 말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단단하고 강한 느낌을 한데 아울러 표현하는 말은 적습니다. 그 가운데 '인격이나 품성, 학식, 재질 따위가 높고 빼어나다'라는 뜻을 지닌 '고매하다'는 미적인 기준 이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에 붙이는 수식어입니다. 지난 8일 옅은 붉은빛을 띤 지붕이 인상적이었던 글씨당 한편에서 고매한 매력을 지닌 김소영 서예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술 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글씨당 #Korean_한글 #한글_아이돌
글씨당 소개 문구에 있는 '글로 제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무슨 뜻인가요?
김소영 작가(이하 '소영') : 사람들은 서예나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며 우리 생활과 조금 멀리 서서 감상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건 우리 생활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캘리그라피는 상업예술이거든요. 집 앞 빵집의 메뉴, 자주 가는 식당의 간판, 얼마 전 문을 연 가게에 쓰인 글자, 옷에 새겨진 레터링이나 패턴 등 수많은 글씨가 우리의 삶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곳 글씨당은 70년 정도 된 옛집입니다. 이 도시에서 우리 현대사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간이죠. 제가 하는 예술과 닮았어요. 저는 그동안 캘리그라피의 상업성과 현대성, 서예의 전통과 보존 가치 등,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분야를 함께 하면서 단순히 예술적 결과를 내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러 가지를 아우를 수 있도록 시도했습니다. 거대한 붓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것도 종이에 쓰인 글씨를 넘어 과정 전체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생이 구분되지 않듯이 글도, 라이프스타일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호 소통하면서 그 범위를 넓혀간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성이죠. 기본을 지키고 경험하면서 삶 속에서 새롭게 소화해서 바깥으로 내보이는 모습, 제 라이프스타일이자 글씨의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서 언급한 확장성을 실천하는 모습이 현재 다양하게 활동하는 작품세계라고 봐도 될까요?
소영 : 네. 맞아요. 저는 캘리그라피를 먼저 하다가 서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역방향으로 배운 셈이죠. POP 전반을 다 다루고 있고, 그중에서 붓글씨와 붓 캘리그라피가 전공분야입니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형태라기보다 홀로 연구하고 공부해왔습니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서고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과 서예, 손글씨를 증명해야 했으니까요. 큰 붓을 들고 눈앞에서 그려내듯이 선보였던 퍼포먼스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작업하면 실수도 적고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을 완성하면 앞에서 지켜보는 관객과 소통할 수 있고, 글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선보일 수 있습니다. 제 호흡과 관객의 반응, 붓이 지나간 화선지 위에 살짝 먹물이 튄 부분까지 온전히 작품으로 승화되죠. 결국, 작가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작가의 예술세계와 작품 모두 가치를 더합니다. 퍼포먼스, 수업, 전시, 작업, 그리고 SNS를 통해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소개하는 과정 모두가 소통이고 작업이라고 봅니다.
강릉이라는 도시는 작가님께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나요?
소영 : 강릉에 온 지 7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유롭다'라는 단어가 생각나요. 한적하면서 적적하지 않은 그 느낌이 좋습니다. 제가 하는 일과 강릉의 분위기가 잘 맞아요. 바다와 산, 솔숲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조용히 골목을 걸을 때면 붓으로 글을 쓸 때처럼 차분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가끔 관광객들이 시내에 가득할 때면 그 자리를 돌아서 가기도 해요. 사람을 좋아하지만, 차분히 걷는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저의 뮤즈도 강릉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허난설헌입니다. 그의 삶, 처연함, 고난과 역경, 그 가운데 지켜온 예술 활동까지 모든 부분이 제게 영감을 줬습니다. 한때는 그의 못다 핀 예술을 이어 활동하겠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예전에 난설헌 기념관에서 전시하며 관객분들께 글씨를 그 자리에서 쓰고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난설헌 생가터 앞에 있는 풀밭에 앉아 관람객에게 글을 써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늘과 땅의 푸르름, 차분하면서 열정적이었던 난설헌의 삶과 오랜 역사가 주는 장대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한복을 갖춰 입고 글로 관객과 소통하는 건 그 자체로 거대한 작품을 그린 기분이었습니다. 난설헌의 삶에 조금 더 다가갔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작업 공간이자 일하는 장소로서 글씨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영 : 전통과 그 변용에 관한 관심이 많습니다. 글씨당에서 지내면서 어느새 저와 이 공간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로 표현하기보다 여러 가지 면을 담고 있는 모습이 어우러진달까요. 저는 서예를 하면서 작품 의뢰를 받는 1인 기업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면 제작, 마케팅, 영업, 소통 등 여러 부분을 스스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과정을 글씨당에서 하고요. 기본과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며 나가는 제 모습과 예술 작업 공간이자 일터, 사무실인 글씨당은 그런 면에서 많이 닮았죠. 이제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하는데 좋을까요. 하나가 된 기분입니다. 글씨당이 저 자체인 거죠.
일을 의뢰하러 오시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글씨당은 비즈니스 공간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돈을 버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현대적인 영역에서 디자인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공간에서 일하는 저는 직장인이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의뢰를 완성하는 기업 대표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모든 작업에 있어서 누군가의 대표 이미지이자 얼굴이 될 수 있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온 힘을 기울여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글씨당
When it comes to describing a person, there are many words that focus on their external appearance. Especially when referring to a beautiful subject, there are many words such as 'gorgeous', 'graceful', and 'pure'. However, there are few words that express both internal and external beauty, as well as a strong and solid impression. Among them, 'gomae' is an adjective that means 'to be of high value beyond aesthetic standards' and is used to describe something with exceptional value. In a recent article featuring the impressive red roof of a building on October 8th, it was possible to have a conversation with Kim So-young, a calligrapher with a gomae charm.
Q: What does the phrase 'presenting a new lifestyle through writing' in the introduction of "Gulssidan" mean?
Kim So-young (hereinafter 'So-young'): People often think of calligraphy or calligraphy works as art that is enjoyed from a distance from our daily lives. However, we can see writing everywhere in our daily lives. Calligraphy is a commercial art. We can see many writings in our lives, such as menus of bakeries near our house, signs of the restaurants we frequently visit, letters written on the store that recently opened, lettering or patterns inscribed on clothes, and so on.
"Gulssidan" is an old house that is about 70 years old. It is a space that fully embodies our modern history in this city. It is similar to my art. Rather than focusing solely on producing artistic results while combining the commercialism and modernity of calligraphy and the traditional and preservation value of calligraphy, I tried to encompass various aspects. The reason why I performed with a large brush was because I thought that the entire process of writing on paper was also a work of art. Writing and lifestyle are constantly connected and expandable through basic principles and experiences, and can be digested anew in life and shown outwardly. This is my lifestyle and the essence of writing.
Q: Can we see this expansiveness in the world of art that you are currently working in?
So-young: Yes, that's right. I first started with calligraphy and then got into calligraphy. I studied pop art in general, and brush writing and calligraphy are my areas of expertise. I studied and researched alone rather than learning from a master. Therefore, I had to show my handwriting and calligraphy to the public. The reason why I performed with a large brush that drew in front of my eyes was also for the same reason. You can create beautiful works by sitting still and working. However, through the performance, you can communicate with the audience who are watching and present the entire process of writing as one work of art. From my breathing to the audience's reactions, to the part where the brush slightly splatters on the paper, everything is fully sublimated into a work of art. Ultimately, when an artist has someone to view the work, both the artist's artistic world and the work itself become more valuable. I view performances, classes, exhibitions, work, and communication with many people through SNS as communication and work.
Q: What kind of inspiration does the city of Gangneung bring to you as an artist?
So-young: It has been about seven years since I came to Gangneung. If I were to express this city in one word, it would be 'leisurely.' It has a quiet and relaxed feeling that is not too busy. The atmosphere of Gangneung matches well with my work. I can draw inspiration from the sea, mountains, and pine forests, and I feel calm when I walk quietly through the alleys, just like when I write with a brush.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선언
강정마을·제주도·도의회 상생화합 선언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31일 오전 제주 서귀포 강정크루즈터미널에서 열린 '강정마을·제주도·제주도의회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에서 캘리그라피 퍼포머 김소영씨가 상생화합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1.5.31
jihopark@yna.co.kr
2022년 인천국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
등록 2022.07.29 14:00:20
[인천공항=뉴시스] 조성우 기자 =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최영창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2022년 인천국제공항 명예 수문장 임명식에서 명예 수문장에 임명된 가수 송가인, 박금암 인천국제공항공사 안전보안본부 경비보안처장과 함께 김소영 작가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를 보고 있다. 2022.07.29. xconfind@newsis.com
[포토] 눈이 즐거운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캘리그라피 작가 김소영, "나, 글씨 김소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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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나, 글씨 김소영>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의 신간 <나, 글씨 김소영>이 출간됐다. 몇 년 간 쓰고 그린 그림들을 모아 한 권의 일기 같은 에세이다.
김소영이라는 사람과 글씨를 쓰며 겪은 7년이라는 시간, 70년된 구옥을 고쳐 만든 <글씨당>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회사를 그만 둘 때도, 강릉에서 살겠다고 했을 때도,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하지 말라고만 했다.
남들이 하지 말라던 길을 선택한 김소영 작가는 모든 길이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다고 말한다. 그 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아 책으로도 출간하게 되었다.
<나, 글씨 김소영>은 글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가지 못했고 하지 못했고 되지 못했던, 척박한 돌무더기에 핀 야생화 이야기다.
김소영 작가는 "강릉에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 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며 "내가 선택한 길들이 어떤 이들에게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치열했던 과거를 긁어 쓴 책"이라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는 "첫인상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거침없음'이다"라며 "지금까지 걸어온 행보가 놀랍고 신기하지만 사실 진짜 흥분되는 것은 미래"라고 전했다.
이어 "김소영 작가는 자기다움을 지역다움으로 그리고 나라다움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자기다움이 어떻게 지역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나, 글씨 김소영>은 출판 2주만에 2쇄에 들어갔으며,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앳원스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 (19)] 글씨와 로컬문화의 결합, 강릉 캘리그라피 공방 ‘글씨당’
염보연 기자 입력 : 2020.04.15 06:00 ㅣ 수정 : 2020.04.23 10:41
대한민국이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 상공인, 자영업자간의 격차 문제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창조도시 혁명이다. 지난 20년 간 지역발전에 의미있는 성과를 꼽자면 서울 강북과 지역도시 골목상권, 제주 지역산업(화장품,IT) 강원 지역산업(커피, 서핑)이다. 그 주역은 창의적인 소상공인으로 자생적으로 지역의 문화와 특색을 살리고 개척해서 지역을 발전시켰다. 이제,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가 지역의 미래이자 희망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각의 지역이 창조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육성과 활약이 필수적이다. 뉴스투데이는 2020년 연중 기획으로 지난 2015년 네이버가 만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도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혁명의 현장을 찾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강원도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크리에이터들이 ‘우먼스 파티(Women’s Party)’ 전시회를 연다.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오는 2일부터 시작하는 우먼스파티 기획전은 <江原圖 : 강원의 그림>의 이름으로, 강릉의 젊은 여성 예술가가 모여 만든 전시다.
이번 전시의 이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강원도의 지명인 ‘江原道’가 아니라 ‘江原圖’, 즉 강원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강원의 이미지를 답습하기보다는, 예술가 각자가 느낀 강원도를 저마다의 개성으로 그려낸 결과물이다. 글, 사진, 회화, 도예,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경험과 감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김소영 캘리그라퍼]
[김소영 도예작가]
[김예지 그래픽디자이너]
[김효정 캘리그라퍼]
[박은희 소설가]
[이혜진 사진가]
[최소연 도예가]
[최지원 오트톡톡 대표]
이번 전시를 풍요롭게 꾸민 8인의 예술가들은 모두 우먼스 파티의 일원이다. 우먼스 파티는 지역과 사람, 그리고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8인의 강원 청년 여성 예술가들 모임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소통하며 지역에서 ‘즐겁고 선한 시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먼스 파티는 지역 내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이전까지 예술활동을 본업으로 하지 않던 사람일지라도 예술인들이 협업하며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예술 활동을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혜진 사진가는 우먼스 파티는 자신에게 ‘작가로서 내딛는 첫 발걸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전까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을 운영해왔다. 이에 “우먼스 파티를 통해 작품을 위해 움직이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며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소중한 발걸음’이라고 말한다. 이 사진가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우먼스 파티가 예술 활동의 길을 이끌어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도 준비하고 있다. 4월 10일(토)과 4월 16일(금) 2회에 걸쳐 진행된다.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즐겁고 선한 시도를 통해 강원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하는 모든 걸음이 가치있는 활동이 되길 바라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앞두고 인사를 전한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의 말이다. ‘강원, 여성, 예술이라는 주제와 우먼스 파티의 가치와 방향에 공감한다면, 우리와 함께 파티를 즐겨요’라는 그들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이들의 파티에 동참하길 바란다.
전시 'Amulet_호령展_범을 깨우다‘ 그 세 번째 이야기, 38명의 작가가 펼치는 “그림으로 만나는 신령한 호랑이의 희망 메시지”
▲ 김규리 작가가 부산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김중건
(인디포커스/김중건) 국내 미술계 거장들과 아트테이너가 함께 참여하는 원화.메타버스 하이브리드 전시회 'Amulet_호령展_범을 깨우다‘가 서울에 이어 부산에 상륙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소의 띠를 맞아 마련했던 'Amulet_우행展'에 이어지는 국내 최초 아트 시리즈 프로젝트다.
▲ ©김중건
올해 임인년을 맞아 '호랑이의 영엄한 기운'을 주제로 온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특히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도전하는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고자 기획됐다.
▲ 호령전 부산전시 개막식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개막식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개막식 © 김중건
부산 전시 개막은 11일 오후 3시 부산시 해운대구 부산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 지하 2층 중앙광장에서 마련됐다.
개막식에는 강형구, 이재삼, 김정선, 찰스장, 정해운, 김혜경, 김규리(배우 겸 화가) 등 작가와 더불어 글씨당 김소영 캘리그라피 작가, 전시를 기획한 정나연 ㈜ 레이빌리지 대표 등이 참여했다.
▲ 강형구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 김중건
▲ 강형구 작가 작품 <베토벤 오브 블랙타이거> © 김중건
▲ 이재삼 작가 © 김중건
강형구 작가는 “호랑이의 기운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재삼 작가는 "달빛을 품은 검은 호랑이 자태에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정화수 한 사발로 기도하는 우리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림 속 호랑이 눈과 마주치는 관람객 모두 희망, 용기, 행운을 가득 안고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 김규리 작가가 자신의 작품 <산군>을 설명하고 있다. ©김중건
배우이자 화가인 김규리 씨는 ”호랑이는 지켜준다(수호)라는 의미가 있다“며 ”(호랑이)작품 제목 <산군>은 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작품 속 호랑이의 파란 눈동자는 다양한 각도에서도 눈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규리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 김중건
이번 전시에는 문화훈장을 수훈한 동양화의 거장 박대성,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강형구, 이재삼 등 미술계 거장 들과 아트테이너 구준엽, 김규리 등 국내외 작가 38명이 참여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 나쁜 기운,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였다. 1770년 호랑이해에 태어난 용맹한 '베토벤 호랑이'부터 19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까지 강한 기운의 범이 내려온다.
더불어 글씨당 김소영 작가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 © 김중건
부산 개막식에는 더불어 글씨당 김소영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 더불어 글씨당 김소영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김중건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9일까지 서울 청담 갤러리원 원화작품 전시와 스타필드 하남에서는 원화.NFT와 디지털 작품이 전사됐다. 3월 11일부터 31일까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서는 원화와 NFT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메타버스 공간으로 확장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NFT는 예술 분야에서도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 시장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호령전에서는 회화, 조각, 오브제,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출품작을 원작과 함께 디지털, 메타버스, NFT 등의 형태로 관람할 수 있다.
▲ 한정판 에디션 작품 구매 안내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 김중건
▲ 작가 구준엽 작품 © 김중건
전시에서는 한정판 에디션 작품 구매는 물론 호랑이 작품이 담긴 스마트폰 그립톡 등 다양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 호령전 부산 전시 신셰게백화점 센텀시티 지하1층 중앙홀 © 김중건
▲ 호령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전시 © 김중건
▲ 호령전 부산 전시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 김중건
▲ 호령전 부산 전시 © 김중건
▲ 호령전 부산전시 © 김중건
한편 '호령전_범을깨우다’ 는 아트테인먼트 컴퍼니 레이빌리지와 그림그린이 공동 주최하고, 대한축구협회사랑나눔재단, ㈜비티씨 커뮤니케이션즈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 LG전자, 스타필드하남 그리고 부산신세계센텀시티가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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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칼럼] 캘리그라피 작가 김소영 "나는 여공이었다"
20대 공장 노동자의 작가 도전~ING
강릉 기반 로컬 크리에이터…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글씨=김소영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꿈꾸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한번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젊은이가 불쑥 사표를 쓰는 결단을 내리고, 좋은 사람과 삶터를 찾고 만나, 쑥쑥 크고 있는 스토리 말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누구나 자기가 사는 동네가 있다. 그 동네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청년을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지역(local)이라고 하면 서울·수도권에서 떨어진 지방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 성수동, 문래동 역시 로컬이고, 여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청년 누구나 크리에이터다.
이 글에 등장했던 크리에이터 중 김소영 캘리그래피(손글씨) 작가가 얼마 전에 한글 글씨체(폰트)인 ‘난설헌체’의 저작권을 등록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래, 이 친구가 있었지!”
평범한 청년이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가 스스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낸 이후 계속 도전 중인 스토리에 딱 맞춤한 인물.
[사진=작가 제공]
그는 요즘 ‘핫’한 캘리그래피 작가이자 강원도의 대표 로컬 크리에이터 중 한 사람이다. 2시간 넘게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걸걸하고 힘찬 목소리, 밝은 기운, 생기가 넘쳤다. 그는 마치 딕션(diction·정확하고 유창한 발음)이 좋은 래퍼 같았다.
마치 랩을 하듯 김 작가는 실업계 여고생이 공장 노동자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과정,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을 쏟아 냈다. 기자와 작가가 한 '티키타카'(공을 짧고 빠르게 주고받는 축구 기술)식 대화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적었다.
그가 대표인 1인 기업 글씨당은 회사 이름이자,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센터장 한종호) 지원과 그가 모아둔 돈을 합쳐 1년 전 마련한 작업실 겸 주거 공간이다. 70년 된 집을 고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승재 위원(이하 위원)= 글씨당 툇마루 볕이 좋다.
김소영 작가(이하 작가)= 처음에 집을 살 때 이런 게 있는지 모르고 샀다. 건물을 올릴까 생각을 했었는데 (오랫동안 덧대온) 조립식 설비들을 뜯어보니까 툇마루도 있고, 기둥도 있었다. 그대로 살려서 살아보려 최소한으로 고쳐서 글씨당을 만들었다.
위원=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계속 붙여 놓은 걸 떼어내니까 본질이 나타난 건가?
작가= 그렇다. 최대한 안 고치려 했다. 지붕도 원래 있던 걸 뒀다. 제가 지금 30대 초반이다. 그런데 이 집이 70년이 됐다고 한다. 시간의 가치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만들어서 살아보고자 했다.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위원= 처음엔 빈 집이었나?
작가= 빈 집이었다. 골조, 마루, 지붕 등만 살리고 그 외 것은 다 쳐냈다. 동네 분들도 좋아해주신다. 동네 어르신들도 글씨당이 들어와서 동네가 산다고 말씀해주신다. 여기로 옮기고 나름 유명세도 탔고 작업 범위도 더 넓어졌다. 공간의 상징성이 있다고 느꼈다. 글씨당으로 온 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다.
위원= 강원창조혁신센터는 어떤 도움을 줬나?
작가= 이 공간으로 오기 전에 글씨와 관련된 여러 일을 하고 있었다. 강릉이라는 도시가 글씨와 잘 어울리지 않나.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전업 작가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걸 센터에서 해결해줬다.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고 방향성을 찾게 됐다. 예산도 두 차례에 걸쳐 총 3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첫 1500만원은 영상 콘텐츠 구축과 교재 제작에 썼다. 두 번째 1500만원은 글씨당을 만드는 데 썼다.
글씨당으로 옮기게 된 데는 센터에서 보았던 여러 사례들의 영향이 컸다. 재생 공간을 기반으로 잘 된 사례들을 보면서 (오래된 빈 집 같은) 재생된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센터의 금전적 도움도 의미가 있지만 공간의 가치와 맥락을 알게 해줬다.
[사진=이승재]
작가= 제가 강릉에 온 지 6년이 됐고 글씨당은 1년 정도 됐다. 센터와 만난 지는 3년 정도다. 혼자 일하다 센터를 만나게 되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내 활동이 새롭게 발견되고 가치를 부여 받게 된 거다. 방향과 맥락이 맞아서 ‘서로를 돕는다’는 느낌이다. 서로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게 우리 지역에도 도움이 된다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원래 하던 일이 센터를 만나고 조금 더 커질 수 있었다.
글씨당과 강원센터의 얘기는 일종의 몸풀기, 김 작가는 본격적으로 실업계 고교 출신 공장 노동자가 작가가 된 전후사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사진=작가 제공]
작가= 저는 원래 이 일로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캘리그래피 작가가 되기 전 경기도 파주의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했다. 의정부의 한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19세부터 시작해 일 3교대 근무를 7년 정도 했다. 쉽게 얘기해서 공장 노동자였다.
공장 일을 하면서도 회사 근처 전문대학(두원공과대)을 다녔다. 전공은 브랜드디자인을 했는데, 캘리그래피는 취미로 배운 거였다. 회사 다닐 때 정말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바리스타, 가죽공예 등 다양한 걸 해봤다. 뭘 잘하는지 찾으려 다 배워보고 자격증도 다양하게 땄다. 결국 글씨가 제일 나랑 잘 맞았다. 3교대를 하면, 24시간 중 8시간을 근무한다. 남는 16시간 중에서 항상 7시간을 잤고 남는 9시간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웠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운 게 캘리그래피하는 데 도움이 됐다. 디자인에서 캘리그래피도 나오고 캘리그래피에서 비즈니스모델까지 갈 수 있었던 게 대학 덕분인 것 같다. 대학을 다닐 때 간판 글씨를 보며 ‘멋있다’ ‘나도 저렇게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원= 공장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작가= 디스플레이 제품 품질 관리를 했다. 디스플레이를 본다는 게 정말 일률적이고 반복적인 일이다. 좋은 회사였고 선배들도 무척 잘해줬다. 하지만 계속 할 일이라는 느낌을 갖기 힘들었다.
위원= 몇 년을 다녔나?
작가= 2008년 11월에 입사했고 2015년에 퇴사했다.
위원= 그 시기는 디스플레이 경기가 좋아 연봉도 많이 받았을 텐데.
작가= 그렇다, 연봉도 꽤 많았고 회사 지원으로 단기 중국 유학도 다녀왔다. LG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일을 하다가 결혼하고 아기 낳고 산다. 근데 저는 그게 싫었다. 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작업도 싫었고, 돈을 벌었지만 사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됐다. 더 이상 그렇게 살기 싫어서 죽을 각오로 퇴사를 했다. 미련도 없었다. ‘어차피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인데, 나가서 재미없고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냥 죽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위원= 퇴사 후 뭘 할 계획이었나?
작가= 계획 없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부모님이 강원도 동해시에 자리를 잡으셨으니까 ‘와서 카페나 하면서 편하게 살아라’ 하셨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좀 쉬고 싶었다. 그때가 25살쯤이었다. 그만두고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답답했다. 모았던 돈으로 강릉에 집을 얻어서 나왔다. 오롯이 혼자 살아보고자 했다. 항상 미련 없이 살았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 하는 생각이었다.
위원= 캘리그래피 작가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나?
작가= 그냥 좋아서 취미로 하던 거였다. 강릉에 혼자 살면서 구직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구해 안목해변 카페에서 알바를 했다. 그 카페 사장님이 강릉 토박이였는데 제가 손글씨를 쓰는 걸 보고 캘리그래피 강좌를 열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원데이 클라스를 했는데 30만원을 벌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40만원 벌 때였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페 2층에 공간을 얻어서 일을 시작했다.
위원= 사람 복이 있었나보다.
작가= 그렇다. 강릉이 외부인에게 배타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니다. 저는 처음부터 좋은 분들을 만났다.
위원= 처음에는 무료로 글을 써줬다고 하던데.
작가= 1호 작품으로 어떤 가게 간판을 써드렸는데, 그 가게 사장님이 너무나 행복해 하셨다.그때 캘리그래피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간판쟁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내 가치에서는 그것보다 큰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돈도 받지 않았다. 강릉에서 열리는 행사나 축제에 한복 입고 가서 무료로 글씨를 썼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 글씨를 그냥 가르쳐줬다. 일이라는 생각 없이 재밌게 논다고 생각했다. 저는 논다고 생각하고 한 일들이었는데 베푼 거다.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적어주며 놀다 보니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착한 사람으로 봐주면서 진짜 그렇게 살게 됐다. 선순환이다.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사했다.
[사진=작가 제공]
위원= 왜 허난설헌인가?
작가= 허난설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너무 좋아한다. 불쌍하고 안타깝고 다시 꺼내주고 싶다. 그래서 허난설헌을 알리려 한다. 난설헌은 아이 둘이 모두 죽고 남편이 바람나고 기구한 삶을 살았던 당시 내 또래 여성이었다. 신사임당과 달리 허난설헌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허난설헌을 알리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의미가 없으면 돈을 버는 일이라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위원= 난설헌체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작가= 난설헌은 한자를 쓴 사람이다. 한글 글씨체가 없고 남아있는 것들은 다 한시다. 그걸 한글로 번역한 걸 보면서 공부한다. 사람들한테 글씨를 가르칠 때 “귀엽게 쓰세요”, “투박하게 쓰세요” 이렇게 가르쳤다. 그렇게 느낌만으로 전달하니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표현이 안 되더라. 그래서 ‘글씨체를 만들어서 더 잘 가르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체를 만들기 시작한 건 그 이유 때문이다. 돌담체, 솔방울체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 제가 제일 잘 쓰고, 영감을 받은 ‘난설헌체’를 만들게 됐다. 난설헌이 한글을 쓰진 않았지만 제가 시에서 얻은 마음을 담은 한글 글씨체에 ‘난설헌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난설헌체’는 이미지적인 것이고 난설헌에 대한 제 마음을 담은 글씨체다.
위원= 글씨라는 물리적 부분 말고 문장, 글귀는?
작가= 저는 매일 겪은 일 중에 인상 깊었던 일을 사진과 함께 적어 놓는다. 하루에 하나씩 쓴다. 그런 일기에서 문장이 나온다. 내 생각이 반영된 함축된 문장이 나온다. 그 압축된 문장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대입해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카피나 슬로건, 시와 같은 느낌이다. 저는 함축된 문장을 좋아한다. 길게 해석되어 있는 글들은 정보성은 강하지만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짧은 한 줄은 열려있다.
김소영 작가 퍼포먼스 모습. [사진=작가 제공]
작가= 젊은 여자가 붓을 들고 나와서 퍼포먼스 공연을 하는 것은 전무후무하니까 더 특별해진다. 배우지 않고 무작정 시작했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2018년 강릉 단오제 포스터 글씨를 썼는데, 단오제 본행사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강릉 토박이만 할 수 있다며 처음엔 안 된다 했다. 계속 부탁해 결국 10분을 받았다. 그게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됐다. 퍼포먼스를 하면 그 자리 분위기를 고취시킬 수 있다. 그게 정말 의미 있다.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위원= 앞으로 뭐 하고 싶은가?
작가= 사랑하는 만큼 일을 하게 되더라. 내 가족을 사랑하면 내 가족을 위한 일만 하게 된다. 제 경우 강릉을 사랑하니 제가 강릉을 위한 일들을 하게 되더라. 국가를 사랑한다면 국가를 위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저는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한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위원= 지역에 대한 사랑을 세계로? 알파벳 폰트도 생각하나?
작가= 난설헌체를 최종적으로 등록하기 위해선 2000자를 써야 한다. 그런데 알파벳은 더 쉽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이라 글씨를 많이 써야 하는데 알파벳은 A부터 Z까지 쓰면 끝이다. 내년 초 글씨체가 나올 예정이다.
<정리=박하늘 인턴기자>
P.S. 김 작가에게 허난설헌체 사진을 추가로 요청해 받았다. 겸사겸사 지금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주고 싶은 말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래 작품을 보내왔다. "누구에게도 완벽한 정답은 없다. 각자의 입장과 환경이 있을 뿐"